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Anonymous specimen

26년 7월의 회고

이름 없이 남겨진 문장을 표본지처럼 조용히 읽습니다.

적어도 6월까지의 나는 나 자신에 취해있었다. 확실히. 주식도, 부동산도, 코인도 매번 오르기만 했으니, 그리 생각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했다. 그러나 26년 7월, 뭔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. 주식은 어느 때 보다 파멸적으로 진폭을 키우며 하락을 시작했고, 세상 모두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. 레버리지 ETF 때문이라나 뭐라나.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의 생각은 그저 FUCK THAT SHIT... I don't give a fuck..... 주식에 저런 정치 논리를 갖다붙이다니, 저건 정치병 말기다 싶었다. 펀더멘털이 흔들림이 없으니, 단기적 매수 찬스라 생각했다.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, 10%, 20% 지수가 내려꽂기 시작했고 주변에서도 레버리지에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. 나 또한 묻어두었던 퇴직연금까지 탈탈 털어 반도체에 묻기 시작했던 것도 이즈음 부터였다. 퇴직연금을 넣고 난 뒤, 잠깐 오른 5%. ‘역시 난 남들과 달라’라는 생각은 하루 밖에 가지 못했다. 지속적 홍콩 ETF발 리밸런싱 매도물량은 증시를 기어코 5000대까지 끌어내린 것이다. 그제서야 맘 속 한가운데 묻어뒀던 기억들이 떠올랐다. ‘기업으로서 좋은 기업이, 주식으로서는 좋은 주식이 아닐 수도 있다.’ 그간 얼마나 이 명제에 많이 당했던가. 그리고 그 명제를 잊지 않겠다 끊임없이 다짐했건만 또 잊었단 말인가. 그와 더불어, 이 손해를 메꿔야겠다는 생각에 원상 따리에 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. 저가 매수가 안되면 진입하지 않는다는 원칙과, 선물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, 후따리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 모두 어겼다. (사실 김피카 채널을 더 열심히 했다면 이 짓거리는 안했을 것이다.) 그 결과, 7월 한 달 간 내 자산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세상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. 다만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던 점은 끝까지 펀더멘털을 붙잡고 손절하지 않은 점, 그리고 단순 주가로 손절이 아닌 펀더멘털의 훼손만을 바라보는 애티튜드를 키울 수 있던 장이었다. 가족을 생각하자. 적극적 투자는 인생을 바꿀 수 있지만, 다른 방향으로도 바꿀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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